아르헨, 바람 잘날 없어도 ‘마음만은 부자’

평일 오후 한가로운 공원의 풍경

지난해 한국에 갔다가 친한 대학동기의 결혼식에서 참석했다.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로부터 “거긴 삶의 질이 어때?” 라는 질문을 받았다. 어느새 횟수로 7년 차인 나의 남미 생활에 호기심이 많은 눈치다. 뜸들일 새도 없이, “삶의 질? 좋지, 엄청… .” 라는 대답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아마 한국의 치열한 삶의 강도와 숨가쁜 속도감에 끌려다니는 친구들과는 다른 현지인들의 여유로운 삶의 방식과 낙천적인 태도가 머리속에 각인돼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의외’라는 반응에 부연 설명을 덧붙이고 싶었는데,시간이 짧았다. 그렇다. 30분짜리 예식장에서도 그랬고, 식당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함께 차분히 마주 앉아 이유를 얘기 할 시간이 부족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공원을 상상해본다. 촘촘한 골목사이에 작은 광장에 벤치들에 앉아있는 사람들, 우거진 나무 그늘 아래에서 점심을 먹는 직장인들, 책을 읽고, 공놀이를 하는 학생들과, 잔디 위에서 둘러 앉아 마떼를 마시면서 기타를 연주하거나 낮잠을 즐기는 연인들과 가족들. 친구들끼리 돌아가며 집에 초대해 아사도(아르헨티나식 바베큐)를 먹는 건 월례행사나 마찬가지다.

한국사람들이 야근 후, 맛집을 찾아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커피숍에서 때로는 밥 값보다 비싼 후식을 먹고, 2, 3차를 거쳐 업무상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동안 벌어지는 일들이다. 아르헨티나의 일상은 아주 여유롭다 못해 게을러 보이기까지 하다. 물론 거기에는 대화와 소통, 교감을 중시하는 문화답게 수다와 음악, 그리고 춤이 끊이질 않는다. 그들의 낙천적 기질의 원천이 이거였구나 싶다.

아사도는 아사도로 끝나는 법이 없다.

지난 주말 집에서 여섯 블럭 떨어진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사람이 있을까 궁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공원은 가족, 친구, 연인, 음악밴드, 요가그룹, 예술가, 수공예 장인들로 가득차 있었다. 계급 인종 성별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과 장소를 누리고 향유하고 있었다. 물론 이런 특징은 공원 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의 문화센터에서 제공하는 무료 혹은 저가 공연 혜택까지 확장된다. 자신의 전문분야를 살린 개인들의 유무료 워크숍도 무궁무진하니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관객에서 ‘배우’로 돌변한다.

문득 라틴아메리카의 문화강국으로 꼽히는 아르헨티나의 힘이 바로 문화생활의 일상화와 예술의 접근성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새삼 이 곳의 삶의 질 만큼은 참 ‘싸다’라는 생각을 했다. 정치 경제적으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아르헨티나지만 시간과 공간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가 부자(富者)였다.

주말 부에노스 아이레스 공원에서는 다양한 활동을 하는 모임을 볼 수 있다.

물론 이 모든게 기본적으로는 광활하고 자원이 풍부한 자연환경이 베푸는 혜택이다. 이러한 천혜의 환경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까지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현지 사람들은 우리처럼 인적자원만으로 승부를 봐야하는 치열한 경쟁사회를 이해하지 못한다. 시간과 세계관, 직업관에서도 그 차이가 두드러진다.

‘삶의 질’은 개인이 자유로운 삶을 추구할 개인의 권리,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 등이 중요한 척도가 된다. 사회나 국가차원에서 본다면 제도가 보장해야하는 시민의 ‘삶의 질’은 국적자, 이민자 할것 없이 모두에게 주어지는 무상교육, 무상진료다. 다양성과 공존, 그리고 바람직하고 건강한 삶을 위한 치열한 토론이 우리보다 훨씬 더 앞서 있는걸 피부로 느낀다. 이렇다보니 ‘삶의 질’조차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간주하는 우리 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사고방식의 패러다임과는 좀 차이가 있다.

종종 이 곳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받는다. 소위 선진국 대열에 끼는 한국 출신이 모국의 정치 경제 문화적 입지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뭐가 아쉬워서 굳이 ‘제 3세계’라고 불리는 이곳에 정착을 하게 되었는지 하는 것이다. 그럼 나는 “시간적, 공간적 여유도 없고, 심지어 숨을 쉬는 것 조차 어려운데, 기술적으로 발전된 나라에서 산다는 게 실질적으로 내 개인의 삶에 어떤 질적 향상을 가져오는 지 잘 모르겠다”고 답하곤 한다.

삶의 질이란 과연 뭘까?

부에노스아이레스=이정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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